-원전은 모든 국가에서 사회적 갈등 원인…‘제대로 된 공론화 과정’ 필요



성윤모(가운데)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12월 3일 국내 최초의 상업용 원전으로 지난해 6월 영구 정지된 부산 기장군에 있는 고리1호기 현장을 방문해 원전 해체 준비 현황을 점검하고 있다.




[한경비즈니스=김정우 기자] 원자력발전소(이하 원전)를 운영하는 모든 국가에서 발견되는 공통된 현상이 있다. 원전을 찬성·반대하는 여론이 대립하며 사회적 갈등을 겪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원전은 ‘양날의 검’이다. 값싼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반면 100%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 원전의 어두운 이면이기도 하다. 

이런 논란을 종식하기 위해 탈원전 갈등을 겪은 여러 국가들이 최종적인 수단으로 꺼내든 카드가 바로 ‘국민투표’다. 최근 대만 정부가 국민에게 탈원전 여부를 물어 정책 노선을 전면 수정한 가운데 국내에서도 국민투표로 탈원전 여부를 결정하자는 여론이 들끓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국민투표, 갈등 해소 위한 최종 수단  

국민투표로 대만의 ‘탈원전’ 정책이 수정된 것은 우리 정부로서는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소식이다. 지난해 ‘탈원전’으로 대표되는 에너지 전환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여당과 정부는 대만의 사례를 많이 참고했기 때문이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대만은 아시아에서 처음 탈원전 정책을 추진한 나라다. 2011년 후쿠시마 대지진 이후 일본은 한때 ‘원전 제로’를 외쳤지만 이후 곧 재가동에 들어갔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일본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2016년 대선에서 탈원전 공약을 내걸었다. 이후 당선되면서 대만의 탈원전 정책에 시동을 걸며 ‘아시아 최초 탈원전 국가’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또 대만은 한국과 산업구조가 비슷하고 이웃 나라와 전력망이 연결되지 않은 지리적 특성도 유사하다. 이런 배경에 따라 우리 정부는 대만을 탈원전 ‘롤모델’로 삼아 왔다. 

청와대와 여당은 탈원전에 대한 비판 여론이 제기될 때마다 “대만도 하는데 우리가 왜 못하느냐”고 반박하기도 했다. 그런 대만이 탈원전에 대한 국민 여론이 비등해지자 결국 투표를 실시했고 정책을 수정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대만의 국민투표가 단순히 원전 가동을 중단하도록 한 전기사업법 조문을 폐지한 것에 불과할 뿐 탈원전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라는 관측도 나온다.

탈원전에 부정적인 측에서는 이런 해석을 일축한다. 대만이 원전을 영구 폐지하는 법 조항을 없앤 만큼 원전을 다시 재가동하는 절차를 이어 갈 것이라는 얘기다.

‘에너지 정책 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협의회’ 공동대표이기도 한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대만 교수들과 정보를 주고받고 있어 이런저런 얘기를 듣고 있다”며 “현재 대만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원전 발전사들한테 멈췄던 원전을 재가동할 수 있는지 조사하라고 지시를 내린 상태이고 법적 절차에 따라 원전 복귀가 서서히 진행되는 중”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탈원전을 반대하는 이들은 한국이 제대로 된 공론화 과정도 거치지 않고 일방적인 탈원전을 진행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지난해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시민참여단 470여 명이 참여한 공론화위원회를 운영했다. 이를 통해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재개하기로 했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위원회가 탈원전에 대한 논의까지 포함해 의견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재개 여부와 함께 원전 확대 정책에 대한 찬반 의사를 물은 것이다. 참여자 중 53.2%가 원전 축소 의견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결과에 근거해 탈원전을 골자로 하는 ‘에너지 전환 로드맵’이 국무회의 보고 안건이 됐고 제8차 전력 수급 계획과 제3차 에너지 기본 계획을 수립하는 기초가 됐다는 설명이다. 탈원전 반대론자들은 원전의 건설 폐지나 중단은 원자력진흥위원회 의결을 거치도록 법에 명시됐지만 그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탈원전이 시작됐다고 지적한다.

◆법적 근거 부족해 실현 여부는 미지수  

따라서 대만의 사례를 거울삼아 이제라도 국민 의사를 물어야 한다는 주장이 곳곳에서 나온다. 특히 정치권에서는 대만의 소식이 전해진 뒤 탈원전 논란을 국민투표로 마무리하자는 주장이 잇달아 등장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현재 자유한국당을 중심으로 한 야당 의원들은 정부의 일방적인 탈원전 정책에 더욱 날을 세우고 있다. 투표를 통해 국민의 의견을 물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하고 나섰다.

심지어 정유섭 자유한국당 의원은 최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에너지법 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다.

에너지 정책을 담당하는 전문가 중심의 공론화위원회를 설치하고 이를 통해 에너지 정책에 대한 안을 제시하자고 제안했다. 또 위원회 판단에 따라 대통령에게 국민투표에 부쳐 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책 연구 기관인 에너지경제연구원도 갈등을 풀기 위한 해법으로 국민투표를 제시해 이 같은 주장에 힘을 보탰다.

연구원은 지난 11월 28일 ‘주요국 탈원전 정책의 결정 과정과 정책 시사점’ 보고서를 공개하며 대만뿐만 아니라 스위스·이탈리아 등도 탈원전과 관련한 국민투표를 실시한 경험이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원에 따르면 스위스는 1979년부터 총 6차례에 걸쳐 국민투표를 진행했다. 마지막 투표는 지난해 5월 이었다. 당시 2034년까지 모든 원전의 가동 정지를 담은 ‘에너지전략 2050’의 통과를 묻는 국민투표에서 찬성 58%, 반대 42%로 가결됐다.

이탈리아는 1987년과 2011년 두 차례에 걸쳐 탈원전과 관련한 국민투표가 진행됐다. 먼저 1987년 원자력 이용과 관련한 3가지 질문에 대해 국민투표가 실시됐고 세 가지 질문 모두에 대해 탈원전을 지지하는 결과가 나왔다.

이후 2000년대 중반 이후 원자력 이용을 재추진하는 과정에서 2011년 또다시 국민투표가 실시됐다. 원전 재개를 묻는 국민투표에서 94%가 반대해 결국 탈원전 정책을 이어오고 있다.

연구원 측은 “탈원전 관련 찬반 논쟁이 가라앉지 않을 때 탈원전 여부를 결정짓기 위한 최종적인 수단으로 국민투표가 고려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탈원전을 국민투표로 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거세지고 있지만 한국에서 실제 투표가 시행될 가능성은 사실 희박하다. 우선은 법적 근거가 부족할 수 있다.

국민투표와 관련한 내용은 헌법 제72조에서 찾을 수 있다.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고 규정했다.

탈원전 문제는 외교·국방·통일에 관한 정책과 무관한 만큼 ‘기타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에 포함된다. 민우기 법률사무소 서한 변호사는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이란 것이 다소 포괄적으로 규정할 수 있어 해석 주체에 따라 이견이 존재할 소지가 있다”고 해석했다.  

일각에선 입법기관에서 탈원전 관련 법안을 제정하지 않은 것을 국민투표가 사실상 힘든 이유로 꼽기도 한다.

한 원전 업계 관계자는 “그간 한국에서 진행된 국민투표나 해외에서 진행된 탈원전 관련 국민투표의 공통점은 모두 개정안을 고치기 위한 작업이었다”며 “현재 한국은 탈원전에 대한 입법 절차 없이 정부 정책에 따라 일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따라서 국민투표를 하더라도 고칠 법안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덕환 교수는 “가령 국민투표까지는 힘들더라도 정부는 반드시 제대로 된 공론화를 거쳐 국민의 공감대를 확인한 뒤 법과 제도의 틀 안에서 에너지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돋보기
대만의 탈원전 국민투표

1978년부터 원전을 운용한 대만은 지난 11월 24일 지방선거와 함께 탈원전 정책과 관련한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2025년까지 모든 원전 가동을 중단하도록 한 전기사업법 조문 폐지에 동의하는가’를 묻는 안건을 놓고 찬반 여부를 물었다. 지난해 8월 블랙아웃(대규모 정전) 사태가 빚어진 뒤 탈원전 정책을 폐기해야 한다는 대만 내 여론이 들끓은 데 따른 것이다.

전체 유권자의 29.84%(유효 투표 참가자의 59.49%)인 589만5560명이 찬성하면서 가결 처리됐다. 대만 국민투표는 찬성자가 전체 유권자의 25% 이상이고 투표자의 과반이 동의하면 통과된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지난해 1월 법조문까지 고쳐 확정한 탈원전 정책은 2년을 넘기지 못하고 폐기 절차를 밟게 된 것이다.

enyo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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