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발전소에서는 각종 방사성 폐기물이 발생한다. 그중에서 사용후핵연료(폐연료봉)는 방사능이 아주 강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로 분류된다. 원전 전체의 방사능 중 95%가 폐연료봉에서 생긴다. 이것은 인체에 직접 노출될 때 하루 내 사망할 정도의 방사능이 매시간 뿜어져 나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위험천만한 물질이지만, 현재 우리나라에는 이를 영구 보관 처리할 시설이 없는 실정이다.

이로 인해 정부는 폐연료봉을 원전 내 별도 임시 저장시설에 보관하고 있다. 부산 기장군을 비롯한 원전 소재 지역 주민들이 폐연료봉 문제에 집단 반발하는 것은 이런 까닭에서다. 근본 대책이 아니라 땜질식 미봉책이니 당연하다. 원전을 끼고 사는 것도 불안한데, 폐연료봉까지 기약도 없이 계속 떠안고 있어야 하니 불안감이 가중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임시 저장시설이 아예 영구 처분장으로 굳어지는 거 아니냐는 우려가 팽배할 수밖에 없다.

원전 소재 시·군의회(기장 울주 울진 경주 영광) 공동발전협의회가 폐연료봉 이전과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처리장(방폐장) 건설을 정부에 촉구하고 나선 것도 이런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폐연료봉 영구 보관대책을 마련하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정부는 임시 저장시설을 주민 동의 없이 건설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일 뿐 고준위 방폐장에 대해선 뚜렷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니 답답한 노릇이다. 정부는 작년 11월 국회에 제출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절차 법안에서 2028년까지 부지를 정하고 2053년까지 완공할 계획이나, 이 법안은 정치권의 소극적 태도와 무관심 등으로 표류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탈(脫)원전 정책도 좋지만, 고준위 방폐장 문제를 해결하는 게 급선무다. 고리원전 내 임시 보관시설이 오는 2024년께면 포화상태에 이르고, 고리 2~4호기의 설계 수명도 2023~2025년이면 끝나게 된다. 폐연료봉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게 불보듯 뻔하다. 언제까지 폐연료봉 처리를 임시 보관시설에 의존할 수는 없다. 정부는 고준위 방폐장 건설 시기를 최대한 앞당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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