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을 할 때 안개가 잔뜩 끼어 앞을 볼 수 없다면 얼마나 두렵겠는가. 국민들도 원자력에 대해 눈앞에 분명하게 보이지 않으니 두려움과 불안감이 있는 것이다. 이에 국민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원자력 안전관리 상황이 투명하게 보여 져야 한다.”

국내 원자력 안전규제의 현재와 미래를 논의하는 장이 마련됐다. 원자력안전위원회(위원장 강정민)가 주최하고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원장 성게용) 주관 하에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KINAC‧원장 손재영)과 한국원자력안전재단(이사장 오성헌)이 진행하는 ‘2018 원자력안전규제정보회의’가 29일부터 30일까지 대전컨벤션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1995년부터 매년 개최된 ‘원자력안전기술정보회의’는 다양한 원자력 유관 기관이 참여해 원자력 및 방사선 안전규제 현안에 대한 개선방향을 모색하고, 안전규제 정책 방향에 대한 제언을 위한 관련 정보를 교환하는 자리였다.

특히 2016년부터는 KINS가 주최하던 ‘원자력안전기술정보회의’가 원자력안전위원회로 이관되면서 “원자력 안전규제와 관련한 현재와 미래의 이슈를 국민들과 공유한다”는 기조아래 ‘원자력안전규제정보회의(NSIC, Nuclear Safety& Security Information Conference)’로 새롭게 단장을 통해 업그레이드됐다.

국내 원자력계 규제기관, 사업자, 연구기관, 학계, 산업체 등 관련 전문가와 원전지역주민 등 2000여명이 참석한 원자력안전규제정보회의 첫날인 29일에는 원자력 안전규제 정책방향에 대한 정책좌담회와 후쿠시마 사고 교훈 및 국내 방재대책 등에 대한 높아진 국민적 관심을 고려한 패널토론 등을 통해 현 시점에서 원자력 안전관련 현안사항을 심도있게 논의했다.

또 30일에는 13개 기술세션(▲원자력안전 정보공개 및 소통 활성화 방향 ▲안전기준 현황 및 국내기준 개선방향 ▲안전해석 ▲사고관리 ▲기계재료 ▲계측‧전기 및 인간공학 ▲계통성능 및 화재방호 ▲구조부지 ▲품질보증 및 성능검증 ▲방사선원 ▲방사선방호 및 방사성폐기물 ▲원자력시설 방재 및 환경감시 ▲물리적방호)을 통해 원자력 및 방사선분야 규제자와 사업자를 비롯한 이해당사자간의 집중적인 소통이 이뤄질 예정이다.

◆PSR 승인제 도입‧다수기 PSA 규제이행 로드맵 마련
이날 원안위는 투명한 소통을 통해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원자력 안전규제체계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가동원전에 대해 10년 단위로 진행되는 주기적 안전성평가(PSR, Periodic Safety Review)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등 ‘원전 안전기준 강화 종합대책’을 수립할 예정이다.

손명선 원안위 안전정책과장은 “국민 눈높이에 부응하도록 현장 중심의 규제활동도 대폭 강화할 예정인데, 우선 대형 지진 대비 원전 안전정지유지계통 설비의 내진보강을 0.3g(규모 7.0 수준)까지 완료하고 지난해부터 실시한 경주지진 단층조사 결과를 토대로 내진설계기준의 적정성 재검토를 추진키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2019년까지 지진관측망 200대 구축 및 장기모니터링 체계구축(가칭 원자력시설 안전규제 지진감시센터)과 더불어 “현재 수행중인 중장기연구 결과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국내 고유의 지질 및 지진특성과 최근 국외 기술동향을 반영해 국내 여건에 적합한 고유 기술기준을 개발하겠다”고 덧붙였다.

특히 부지 내 원자로시설의 증가로 인한 부지 전체의 리스크가 증가함에 따라 다수기 확률론적 안전성평가(PSA, Probabilistic Safety Assessment)를 통해 정량적인 다수기 중대사고 리스크 및 부지 리스크 평가(SRA)가 필요하다는 의견들이 제기됐다.

이에 손 과장은 “현재 미국과 캐나다 등에서도 규제방법론을 개발하기 위한 논의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면서 “이에 우리나라도 다수원전 운전 상황을 고려해 다수기 원전 동시사고 발생가능성 및 PSA 규제방법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으며, 오는 2020년부터 원전 시범적용을 통해 규제 적용의 적정성을 사전에 검증토록 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이밖에도 원안위는 대규모 원전 사고 시 사업자의 법정 손해배상 책임한도는 원전 부지당 약 5000억 원이다. 그러나 앞으로 현행의 배상액은 폐지되고 사업자(한국수력원자력)에게 무제한 책임원칙을 원자력손해배상법에 적용하는 등 배상조치액도 국제동향 등을 고려해 대폭 상향된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한 배상액이 약 75조원(2017년 12월 기준)이었는데 반면 현재 한수원의 법정 손해배상 책임한도는 원전 부지당(고리ㆍ월성ㆍ한빛ㆍ한울ㆍ새울 등 총 5개 원전부지) 약 5000억 원으로 정해져 있어 초대형사고가 발생하더라고 사업자의 추가 배상할 의무가 없으며, 배상액 또한 부족하다는 주장이 제기돼 왔다.

손 과장은 “이에 대규모 원전 사고 시 사업자(한국수력원자력)의 무제한 책임 원칙을 원자력손해배상법에 적용하고 배상조치액을 대폭 상향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밖에도 원안위는 주민보호 강화를 위한 방사능 방재체계를 실효적으로 개선하고 무엇보다 국민의 방사선 영향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원전주변 주민에 대한 방사선 건강영향 조사 근거규정을 마련하고 조사체계를 구축할 예정이다.

손 과장은 “정보 공개대상을 규제기관에서 생산한 정보뿐만 아니라 사업자가 생산한 정보까지 대폭 확대하기 위해 ‘(가칭)원자력안전정보 공개 및 소통에 관한 법률’ 제정 등을 통해 정보공개 제도를 구체화하는 한편 원전지역 주민과 소통창구인 원자력안전협의회의 법적 근거를 마련할 계획”이라면서 “경주와 서울에서 각각의 공청회 및 지역별 설명회를 통해 다양한 의견수렴을 거쳐 오는 6월말 원자력안전위원회 회의에서 심의‧의결해 최종 확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원전사업자 “비용과 편익…합리적 분석도 따져봐야”
한편 손 과장의 발표에 이어서 엄재식 원안위 사무처장을 좌장으로 제무성 한양대 교수,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처장, 이재기 원안위 비상임위원, 김혜정 원안위 비상임 위원, 전휘수 한수원 부사장, 백원필 한국원자력연구원 부원장이 참여하는 정책좌담회가 진행됐다.

먼저 제무성 교수는 “지진으로 인해 전기 및 가스 라인, 저장 탱크의 누설로 화재가 발생할 수 있다”면서 “이에 지진으로 인한 동시다발 화재가 원전 노심손상에 중요한 기여요인(Contributor)이 될 수 있으므로 이에 Zion PSA 등 지진/화재 중요기여인지 분석 등의 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양이원영 처장은 “시민사회단체들이 신고리 5⋅6호기 공론화를 거치면서 원전 안전과 관련해 정책과제를 제출한바 있으며, 아울러 강정민 위원장 취임 이후 간담회 등을 통해 언급된 내용 등도 종합대책에 반영돼 긍정적이지만 그럼에도 부족하다”면서 “원자력안전 규제의 철학부터 다시 세워야한다”고 꼬집었다.

또 그는 “40년 넘게 원전을 운영하며, 세계최고 수준의 원자력 기술력을 가졌다고 언급하면서도 여전히 원자력안전 규제기준을 미국의 원자력규제기관(NRC)의 지침을 중용하고 있다”며 “국내에서 독자적으로 개발한 규제지침이 없다”고도 지적했다.

그러면서 양 처장은 “결국 원자력 안전규제의 기조가 과거 ‘사업자의 권한보장’에서 현재 원안위가 추진하고 있는 ‘국민의 안전’으로 그 무게중심이 옮겨 갈 때 진정한 원자력 안전 강화조치가 이행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이어 전휘수 한수원 부사장은 “안전을 최우선과 투명한 정보공개, 국민들과 소통 등은 한수원이 가장 중요한 과제로 인식하고 있으며, 앞으로 국민의 눈높이 맞는 소통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면서 “다만 산업계가 갖고 있는 비교적 제한되고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운용해야 안전성 향상에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인가”라는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전 부사장은 “특히 주기적 안전성평가의 경우는 결국 소급적용인데, 미국의 NRC는 비용 대비 편익 분석을 통해 규제기준 강화조치를 위해 투입된 비용보다 안전성 강화수준이 높다는 결과가 나올 때 적용한다”면서 “반드시 기회와 비용에 대한 합리적 분석을 통해 규제조치가 강화돼야 바람직할 것이고, 세부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관련 기관들간의 협의와 협업을 통해 합리적인 도출이 마련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날 성게용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원장은 개회사를 통해 “위험에 관한 결정 역시, 오직 전문가와 정책결정자들이 과학적 평가인 ‘안전’ 판단에 일방적으로 의존하던 과거에서 벗어나 이제는 각종 위원회, NGO, 시민그룹 등과의 논의의 장을 개방해 사회적 평가인 ‘안심’ 판단을 반영하는 ‘리스크 거버넌스(risk governance)’의 시대가 됐다”고 언급했다.

성 원장은 “리스크 거버넌스 시대의 생존에너지는 바로 ‘신뢰’이며, 이에 올해 회의는 ‘소통’을 키워드로 예년보다 규제정책과 현안문제에 대한 패널토론의 비중을 높였다”면서 “규제자와 사업자는 물론 시민사회단체와 지자체, 지역주민과 일반 국민이 모두 함께 참여하게 됨으로써 더욱 활발한 창조적 마찰과 건설적 논쟁이 가능해졌으며, 이는 곧 더욱 우수하고 다양한 형질의 원자력안전 유전자를 확보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전=김소연 기자  ksy@knpnews.com

<저작권자 © 한국원자력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