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규씨는 효성중공업에서 15년 동안 변압기 영업을 해왔다. 김씨는 입찰 과정에서 벌어졌던 담합행위에 문제를 제기했다가 해고 당했다.
 김민규씨는 효성중공업에서 15년 동안 변압기 영업을 해왔다. 김씨는 입찰 과정에서 벌어졌던 담합행위에 문제를 제기했다가 해고 당했다.
ⓒ 지유석

지난 3월 서울서부지방검찰청은 주식회사 효성과 효성중공업 직원 5명, 그리고 LS산전 영업담당 직원 1명 등 모두 6명을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검찰은 이들이 지난 2013년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진행한 울진, 월성, 신고리 3·4호기 비상전원공급용 승압변압기 구매 발주 과정에서 담합을 했다고 공소장에 적시했다. 원전 부품 중 하나인 승압변압기는 고장을 일으키면 대규모 정전사태(블랙아웃)를 일으키는 주요 부품이다.

그럼에도 입찰업체들은 부품원가를 부풀리는가 하면, 멋대로 담합을 자행했다. 사실 이 같은 입찰 비리는 새삼스럽지 않다. 공공부문 입찰비리는 혈세 낭비 및 비자금 조성으로 직결된다는 점에서 국민경제에 미치는 해악이 크다. 더구나 원전 입찰 담합은 공공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이 같은 심각성이 무색하게 입찰담합은 '업계관행'으로 굳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관행은 내부고발자의 제보로 세상에 알려졌다. 주인공은 효성중공업에서 15년 동안 변압기 영업만을 맡아왔던 김민규(당시 차장)씨였다. 김씨는 '업계 관행'을 더 이상 방관할 수 없어 내부에서 문제를 제기했다.

처음 문제를 제기할 때만 해도 김씨는 자신이 가시밭길을 걷게 되리라 생각 못했다. 오히려 자신의 고발을 계기로 조직 안에서 소통이 활발하게 이뤄질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순진했음을 깨닫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김씨를 지난 3월 효성 본사가 있는 마포구 모처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아래는 김씨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 원전 부품 납품 과정에서 벌어지는 담합을 고발했다. 어떤 부품이었나?
"먼저 내가 했던 업무를 말해야 할 것 같다. 효성중공업에서 발전소 내 보조변압기 영업을 담당해 왔다. 변압기가 뭐냐면, 발전소의 발전출력을 송전선로에 싣는 장치를 주변압기라고 한다. 주변압기는 크기가 대형 트럭만하고 가격도 100~200억 가량으로 비싸다. 그러나 고장이 나더라도 발전소 내 안전시설에 아무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전기를 판매하는 쪽에서는 주변압기에 주력한다.

반면 보조변압기는 크기가 작고 가격도 수 천 만 원에서 2억 원 가량이다. 이 보조변압기는 제어·설비·안전계통에 직접 관여한다. 만약 이게 고장을 일으키면 발전은 고사하고 전원도 켜지 못한다. 말하자면 후쿠시마와 같은 대규모 정전사태(블랙아웃)가 벌어진다는 말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쓰나미로 발전소내 전원계통이 침수되면서 통제불능의 원자로가 폭발한 사건이었다."

- 변압기 납품은 효성·현대중공업·LS산전이 과점하고 있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가?
"원전은 국가안전시설이다. 그러다보니 대기업 제품을 선호한다. 대기업이니까 품질이 보장되고 무엇보다 부도 우려가 적다고 본다. 사실 부품제조 업체가 부도가 나게 되면 부품 수명이 다했을 경우 곤란해진다. 이런 이유로 처음부터 대기업 제품을 원하는 것이다."

- 입찰업체가 어떤 식으로 담합을 했는가?
"고의적으로 특정업체를 밀어주기 위해 다른 업체 담당자가 입찰액을 높이거나, 입찰에 참여하지 않았음에도 참여한 것처럼 허위보고를 하는 식이다. 회사가 이익을 취할 수 있었음에도 담당자가 본분을 어겼다. 따라서 명백한 업무상 배임인 셈이다."

*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팀장 A씨는 김씨에게 "판을 우리가 깔아 놨으니 무조건 우리가 낙찰을 받아야 한다. 설계팀에서 산출한 원가 보다 높은 금액으로 원가를 책정한 견적서를 보내 수주이익률을 높이고 LS산전과 현대중공업에도 우리 견적 금액을 알려줘 비슷한 수준에서 제출하도록 한 후 들러리를 서 줄 업체가 있는지 알아보라"고 지시했다. 이에 김씨는 LS측에 의사를 타진했고, LS 측은 규격입찰서 등을 효성에서 작성해 주는 조건으로 효성이 낙찰 받을 수 있도록 형식적으로 입찰에 참여하기로 동의했다. 

담합은 사실무근? 업체로선 당연한 반응

- 구체적인 담합정황과 관련해서는 지난 해 8월 <비즈한국> 등 몇몇 매체들이 자세히 보도한 바 있었다. 그런데 당시 효성중공업·현대중공업·LS산전 본사 모두 입찰담합은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했다.
"아주 당연한 반응이다. 경쟁사에서 15년 가까이 함께 일했던 사람에게 관련 대화 내용을 보여줬음에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발뺌했다. 때론 경쟁하고, 때론 담합도 했는데 문제가 생기니 안면을 바꾸더라. 그리고 한수원은 업체들의 담합에 놀아났다. 그것도 수십 년 동안.

검찰이 기소한 상황이지만 회사 쪽 태도는 별반 달라진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지난 해 12월부터 공정거래위원회와 검찰은 강도 높게 압박했다. 특히 검찰은 본사를 압수수색했고, 관련자들을 재판에 넘겼다. 이러자 회사 쪽은 결재 라인이 차장까지다, 담합 사실을 몰랐다는 식으로 발뺌하고 있다."

- 앞서도 언급했지만, 변압기는 안전에 직접 관여하는 부품이다. 이렇게 중요한 부품 입찰에서 담합이 이뤄졌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대한민국이라서 그렇다. 현재 이 나라가 처한 한 단면이다."

- 어떤 동기에서 내부에서 문제제기를 하게 됐나?
"양심의 가책 때문이었다. 15년 넘게 이 분야 영업을 해왔다. 회사를 위한다는 명분하에 지시를 받고 움직였다. 말하자면 공범자다.

가장 직접적인 계기는 2013년 차장으로 승진하면서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처럼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이제껏 양심적으로 산 건 아니지만, 한 부서를 책임지는 보직을 맡다보니 팀이 이런 상태로 가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공기업 입찰이고 영업활동이니 투명해야 한다고 팀원들을 독려했다.

마침 모그룹인 효성이 2007년 윤리경영을 내세웠기에 회사의 기치와 맞다고도 보았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2013년 4월 내가 원래 맡기로 했던 팀장 자리에 다른 분이 낙점된 것이다. 아무래도 담당 임원이 나를 껄끄럽게 여긴 것 같다. 이후 내부 갈등이 생겼다.

난 이전의 관행을 탈피하고, 재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신임 팀장은 예전 방식을 답습했다. 담합행위도 보다 노골적으로 이뤄졌다. 이 해에만 한수원을 상대로 4~5건의 담합행위가 벌어졌다. 공정하게 경쟁하도록 판을 만들어 놓았는데, 이게 뒤집히기도 했다.

팀 내부에서 불법행위가 벌어졌어도 경영진은 알지 못한다. 또 조직엔 절차가 있기에 팀원이 경영진에 직보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보았다. 무엇보다 선을 넘은 건 막아야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 문제 제기는 어떤 식으로 했나?
"2013년 5월 회사 내부제보시스템 이메일을 통해 실명으로 문제제기를 했다. 이 시스템은 모그룹이 부패 척결을 위해 구축한 것이다."

용기를 낸 내부 문제제기, 대가는 '해고' 

- 회사의 반응은? 
"내부제보 시스템을 너무 믿었던 것 같다. 회사는 바로 보복조치를 취했다. 먼저 2014년 4월 인사고과에서 최하위등급인 'D'등급을 받았다. 전년도에 난 팀내 13명 중 최고 등급을 받아 차장으로 승진했는데 말이다. 뿐만 아니라 연봉도 15% 깎였고, 7월엔 비영업직 부서로 발령냈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어 이의를 제기했다. 그랬더니 회사는 관련자들의 진술서를 근거로 날 '갑질을 일삼는 못된 직장상사'로 낙인찍었다. 이어 9월 감사에 들어갔고 10월 징계위원회를 열었다. 그리고 12월  회사에서는 '임직원 협박, 명예훼손, 인화저해' 등의 혐의를 제기하며 정직 3개월 처분을 내렸다. 여담이지만 담당 변호사는 처음부터 프레임 싸움에서 졌다고 하더라. 즉 '내부고발 해서 보복 당했다'는 프레임으로 가야 했는데 회사 쪽은 인사평가에 불만을 품었다다는 식으로 몰아갔고, 내가 여기에 말려들었다는 의미다."

- 법에 기대어 볼 생각은 없었는지 궁금하다. 
"회사의 징계가 있고 난 다음해 인 2015년 3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아래 지노위)에 부당징계구제신청을 냈다. 그랬는데 지노위에서 3개월 시효가 만료됐다며 각하처분을 내렸다. 구제신청 기간이 3개월인데 지노위는 처분 시점을 12월이 아닌 10월로 본 것이다.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에 재심을 신청했는데, 중노위는 지노위 판정이 적법하다며 재심을 기각했다.

결국 2015년 10월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이러자 회사는 다음 달에 해고 조치를 취했다. 황당했다.

여기서 물러설 수 없어 재차 2016년 10월 서울서부지방법원에 해고무효확인소송을 냈다. 1심 법원은 2017년 11월 회사의 손을 들어줬다. 다시 항소했고, 지난 달 첫 번째 재판이 열렸다. 그런데 이 와중에 검찰의 기소가 이뤄졌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기류가 바뀌었음을 실감한다. 그러나 대법원 판단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효성은 지난 1월 22일 <한겨레> 보도에서 "김 전 차장이 인사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은 데 불만을 품고 공익제보자를 자처하며 비리 폭로 협박, 업무지시 불이행 등 여러 문제를 일으켜 결국 해고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편집자 주)

- 어느 조직이든 내부고발자에겐 가혹한 보복을 가한다. 이를 모르고 문제제기를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려가 없지 않았다. 그래서 회사 내부제보시스템에 이메일을 보내기까지 고민을 거듭했다. 더구나 실명으로 해야 했으니 말이다. 그러던 와중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차장 직급이고, 상당한 사실관계가 반영된 제보였고, 잘못된 조직문화도 함께 담았다. 무엇보다 회사의 이익에 해를 가하는 행위임을 자세히 적었으니 회사가 수용할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조직의 힘은 너무 셌다. 감추고 싶은 비밀의 숲이 너무 깊었다. 난 감히 그 장막을 열려 했던 것이고, 그래서 처참하게 깨졌다."

- 어떤 식으로 분쟁이 마무리되기 원하는가? 그리고 내부고발을 준비 중인 이들을 위해 조언 한 마디 부탁한다. 
"그동안 회사와 싸우면서 국가가 개인 보다 재벌 대기업의 편에서 해석하고 판단한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기업과 개인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쌍방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줘야 하는데도 말이다. 그러니 이제는 원칙대로, 치우침 없는 결론이 났으면 좋겠다. 재벌 대기업의 탐욕이 절대로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을 건드렸다. 국민의 안전을 위협했고 국민의 세금에 더러운 손을 댄 것이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게 국가의 기본 소임 아닌가?

그리고 되도록 내부고발은 만류하고 싶다. 물론 내가 똑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내부 고발하겠지만 말이다. 전제는 권하고 싶지 않고, 주변에 누가 내부고발을 마음먹었다면 설득해서 말리고자 한다.

그럼에도 내부고발의 길을 가겠다면 무기를 준비를 하고 그 길로 들어가라고 당부하고 싶다. 무슨 일이 있든 메모를 하든, 녹음을 하든 나중에 쓰일 수 있으니 증거를 남기라는 말이다. 약자가 가질 수 있는 무기는 증거 말고는 없다. 스스로 준비를 많이 하고 그 길로 가라. 그리고 자신을 공격하지 말았으면 한다. 이건 저들의 노림수에 말려드는 거다. 저들은 내부고발자가 스스로 무너지기를 바란다.

그런데도 많이 다칠거다. 나 역시 2년 넘게 다쳤다. 만약 다치는 게 두렵다면 처음부터 발을 들이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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