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누유도 추가 발견···격납건물 내 텐돈(강선)에도 문제?
전남 영광에 위치한 한빛 원전 (사진=연합뉴스)
전남 영광에 위치한 한빛 원전 (사진=연합뉴스)

[서울파이낸스 김혜경 기자] 전남 영광 주민들이 지난 20여 년간 문제를 제기한 한빛 원전의 안전 관리 부실이 재조명되고 있다. 앞서 지난해 한빛 4호기 증기발생기에서 망치 형태의 금속 이물질과 함께 격납건물 콘크리트 공극(빈 공간)이 발견되면서 한 차례 논란이 일었다. 민관합동조사단이 발족돼 최근 조사를 진행한 결과 깊이 30cm 규모 등 14개 공극이 추가 발견되면서 부실공사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모양새다. 

두께 120cm의 최후 방호벽에 구멍이 뚫렸지만 구체적인 원인은 여전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한빛 3·4호기의 상이한 콘크리트 타설 방식을 이유로 제기하고 있지만 콘크리트 다짐 작업 미흡, 공기 단축 등 시공 과정에서 불거진 의혹들도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공극과 함께 격납건물 내부 '그리스(grease)'가 누유돼 콘크리트 공극에서 발견된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국내 원전 격납건물의 구조적 안전에 대한 전면 재조사와 사업자가 구체적인 대책을 내놔야 한다는 지적이다. 

◇ 타설 공법 때문이라고?···공극 발생 원인 여전히 불명확

한빛 4호기 격납건물 콘크리트 공극 문제가 불거진 것은 2016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자력안전위원회와 한수원은 한빛 2호기 정기 점검 결과 두께 6mm의 격납건물 라이너플레이트(CLP·내부철판)에서 부식에 의한 1∼2mm 크기 구멍 2곳을 발견했다. 구체적인 원인을 찾지 못하던 중 한빛 1호기에서도 총 50곳의 철판 부식이 발견되자 원안위와 한수원은 '해풍'을 원인으로 제시했다. 두 경우 모두 바다 쪽 방향에서 부식 현상이 나타났다는 판단에서다.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설계한 한빛 1·2호기와는 달리 한국 표준형 원전에서는 부식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하지만 한울 1호기와 고리 3호기에서 연이어 철판 부식이 발견되면서 염분 침투설은 설득력을 잃었다. 위치가 바닷가 방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시 전문가들은 철판 부식의 원인 중 하나로 콘크리트 문제가 있을 수 있으니 점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근본적인 원인을 찾지 못한 채 결국 표준형인 한빛 4호기 격납건물에서 공극이 발견된 것. 격납건물 균열과 열화 현상, 부실시공 등을 총체적으로 확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잇따랐다. 

격납건물 내부 일부분이 텅 빈 초유의 사태로 지난해 6월 한빛원전민관합동조사단이 발족됐다. 한수원은 깊이 8cm 이상의 공극 발생 가능성은 희박하다며 전면 조사는 뒤로 미뤄왔다. 매설판 보강재 설치형상으로 인해 이론적으로 8cm 내외라는 것이 이유였다. 결국 예상을 뛰어넘는 깊이 20cm 이상의 공극 3개소(21cm·23cm·30cm)가 발견됐고, 사업자는 1~8단에서 9~15단으로 조사 범위를 넓힘과 동시에 한빛 3호기에 대해서도 추가 점검을 하겠다는 계획이다.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은 2년이 지난 현재도 규제기관과 사업자가 근본원인은 여전히 밝혀내지 못한 채 안전만을 장담하고 있다며 비판하고 나섰다. 

앞서 영광지역 주민들은 원전 건설 단계에서부터 문제점을 제기하고 나섰다. 주경채 한빛원전범대핵위원회 위원장은 "야간에 금지된 타설 공사 실시나 비용 절감을 위한 공기 단축과 같은 제보가 비일비재했다"면서 "주민들이 지속적으로 부실시공 문제를 제기하자 국가로부터 반체제 세력이라는 오해도 받는 등 어려운 시기도 있었는데 이 같은 의혹들이 현재 다시 밝혀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상황을 기록한 <영광원전의 재인식>에 따르면 1989년 12월 규제기관은 '한빛 3·4호기 안전관리 특별점검 결과보고서'를 통해 사업자가 운영기술지침서상의 정기점검을 57건이나 실시하지 않았다며 원자력법 제 29조를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격납건물에 복수의 구멍들이 발견됐지만 정확한 원인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 더 문제다. 한수원 관계자는 "다른 원전과는 달리 한빛 3·4호기 격납건물만 콘크리트 타설 공법을 다르게 적용했기 때문에 공극 발생 원인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앞서 진행된 일련의 상황들과 30cm 이상의 공극이 발견된 점으로 미뤄봤을 때 사업자의 추정은 설득력을 잃었다는 지적이다. 한병섭 원자력안전연구소 소장은 "일반적으로 콘크리트를 붓고 양생까지 12시간 이상을 기다리면서 공기가 제대로 제거됐는지 확인하는 절차를 거치는데 타설 공법이 바뀐다고 다짐 작업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면서 "건설 당시 촉박한 공기에 쫓겨 콘크리트 다짐 작업을 제대로 했는지부터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조사에서도 공극을 확인하기 위해 타격법(망치로 두들겨 공극을 확인하는 방법)을 주로 사용하고 있는데 내벽 부근 1~2cm 사이의 공극은 확인할 수 있지만 좀 더 깊숙한 곳에 있는 공극은 확인이 불가하다"면서 "엑스레이 방식을 사용할 때도 명확하게 위치를 선정해 찍어야 하는데 기준을 세우지도 않고 막 찍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 원전업계 관계자는 "격납건물에 공극이 생기면 건물 내부의 '부압(마이너스 압)' 상태가 제대로 유지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면서 "압력이 높아지면 압력을 낮춰야 하는데 안전에 위해가 되는 공극이 존재한다면 압을 낮추는 데 시간이 훨씬 많이 걸린다. 특히 건물 천장에 위치한 살수계통은 정압으로 변환될 시 작동이 아예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 텐돈과 시스관 사이 '그리스'는 어떻게 누설됐나 

민간합동조사단은 텐돈(tendon·강선)과 시스관(sheath pipe·외장관) 사이의 '그리스(grease)' 누설 사실도 추가로 확인했다. 원전 격납건물은 인장 강도를 높이기 위해 '포스트텐션닝(post-tensioning)' 공법이 적용되는데 구조물을 고정하기 위해 가로와 세로 방향으로 텐돈을 매립한다. 텐돈을 감싸고 있는 것이 시스관이며 텐돈과 시스관 사이 그리스가 들어간다. 그리스가 누유돼 일부 콘크리트 공극에서 발견된 것이다. 의문점은 격납건물 내부 깊숙한 곳에 위치한 텐돈·시스관에서 어떻게 그리스가 누설돼 조사 시 확인할 수 있었는지다. 

한 소장은 "한빛 4호기 격납건물 일부 철판을 제거하니 그리스가 흘러나온 부분이 발견됐는데 구조물 내 그리스가 들어가는 곳은 텐돈 한 군데"라면서 "텐돈은 표면에서 50cm 지점에 매설되는데 텐돈에서 누유된 그리스가 벽면으로 흘러나오려면 주변에 공극이나 크랙(금)이 존재해야 가능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이어 "과거 공사 시 누유된 그리스를 제대로 닦아내지 않았거나 텐돈 파손에 의해 그리스가 내부의 틈을 타고 벽체로 이동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시민단체인 에너지정의행동도 성명서를 통해 "그리스 누유 현상이 발생은 단순히 공극만 있는 것이 아닌 격납건물 전체 텐돈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에 매우 심각하다"고 전했다. 

주 위원장은 "이번에 발견된 그리스 누유의 경우 시공 당시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면서 "이른바 '날림공사'라 불릴 정도로 원칙까지 어기며 급하게 시공하다보니 누유된 부분을 제대로 제거하지도 않고 그냥 덮어버린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역민 입장에서는 냉각재 상실 사고(LOCA) 등 설계기준을 초과하는 사고 발생을 우려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정부나 사업자에 근원적 대책을 요구해 받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한빛 원전뿐만 아니라 한국 표준형을 대상으로 전면 재조사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수원은 추가 조사를 통해 그리스 누유의 원인을 확인한다는 입장이다. 한수원 관계자는 "겔(gel) 상태의 그리스는 고온·고압 상태에서 고유동 상태로 변하는데 밀폐성이 약한 시스관 연결부와 콘크리트의 미세한 균열 등을 통해 누설되는 경우가 있다"면서 "누설이 발견된 위치를 봤을 때 시스관까지 공극이 발생한 것으로 단정짓기는 곤란하다"고 섣부른 예단을 경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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