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 시대의 과제’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 토론회
14일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열린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이 논의하고 있다. 류효진 기자
2040년 에너지 소비 목표량
무리하게 잡아 실행력에 의문

재생에너지 기술 정착 때까진
원전ㆍ석탄을 연결 고리로 활용

전력산업 공기업 독점 벗어나
혁신기술로 새 시장 창출돼야

지역서 전기 생산하고 소비
분산형 전력 체계 만들어야

2040년까지 중장기 국내 에너지 수급 계획인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에기본)’ 확정안을 마련 중인 정부에 대해 전문가들은 “단순히 여러 에너지 발전비율을 조정하는데 그치지 말고, 분산형 전력체계 구현과 에너지 소비혁신 등 국내 전력산업 구조를 개선ㆍ개혁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간 “에기본 관련 논의가 원자력발전 비중 축소와 신재생에너지 확대에만 초점이 맞춰져 정작 중요한 과제가 뒤로 밀려나 있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지난 14일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에너지전환의 과제’를 주제로 열린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 토론회에서 △에기본 에너지 수요관리ㆍ절감 목표의 현실성 △에너지 분야 경쟁력 강화ㆍ충격 완화 방안 △전력산업 개편 방법 등에 대해 집중 논의했다. 앞서 지난달 7일 학계ㆍ산업계ㆍ시민사회 등 에너지 민간 전문가 75명이 참여한 에기본 워킹그룹은 권고안을 산업통상자원부에 제출했다. 권고안은 관계부처 협의와 공청회, 에너지위원회, 국무회의를 거쳐 확정된다.

이번 토론회는 산업부가 에기본 확정안 마련에 앞서 권고안에 대한 의견수렴을 위해 마련한 두 번째 토론회다. 연말까지 ‘4차 산업혁명과 미래에너지산업’ ‘신재생에너지 비전’을 주제로 두 차례 더 토론회를 열 계획이다. 100여명이 참석한 이 날 토론회에는 이종수 서울대 기술경영경제정책대학원 교수, 온기운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김해창 경성대 환경공학과 교수가 발제자로 나섰다. 박종배 건국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와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석광훈 녹색연합 연구위원이 토론자로 참가했다. 사회는 박주헌 동덕여자대 경제학과 교수가 맡았다.

◇에너지 목표 “달성 불가능” 대 “의지 문제”

전문가들은 ‘204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율 25~40%로 확대’ ‘2040년 최종 에너지 소비량을 지난해와 비슷한 1억7,660만toe(석유환산톤ㆍ1toe는 원유 1톤을 태울 때 생기는 에너지)로 억제’ 등의 에너지 관리 목표로 내건 에기본 권고안에 대해 의견 차이를 보였다. 에기본은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에 따라 5년 주기로 수립하는 에너지 분야 최상위 행정계획이다. 3차 계획은 2019∼2040년을 아우른다. 정부는 이미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비율을 20%까지 올리기로 했다.

온기운=한국은 제조업 비중이 매우 높은 데다, 최신 설비가 많아 추가로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어렵다. 2040년 최종 에너지 소비량을 지난해 수준에 맞추겠다는 건 불가능하다. 무리하게 목표를 잡으면 무리수가 나올 수 있다.

정범진=에기본 워킹그룹은 에너지 수요가 늘지 않을 것으로 봤는데, 인류 역사상 에너지 소비량이 줄어든 적은 석유파동 때 말고는 없다. 2040년 에너지 최종 소비량 관리 목표를 너무 높게 잡았다. 에너지 계획의 가장 큰 목적은 에너지의 안정적인 공급이다. 수요 관리와 재생에너지 보급만으로 이를 달성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재생에너지 확대에 반드시 고려돼야 할 보조금, 입지 등 구체적 방안이 포함돼 있지 않고 재생에너지를 25~40%까지 늘리겠다는 목표만 제시돼 있어 실행력에 의문이 든다.

김해창=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진은 2009년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에 20년 안에 전 세계 전력의 100%를 청정에너지(원전 제외)가 조달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올해 세계원전산업동향보고서(WNISR)를 보면 지난해 원전 발전량은 전년과 큰 변화가 없었지만 풍력발전은 17%, 태양광 발전은 35% 증가했다. 본토 동쪽에 원전을 계속 짓고 있는 중국조차 2000~2016년 증가한 태양광ㆍ풍력 발전설비량이 원전의 2.5배, 4.8배에 달한다. 몸무게가 100㎏ 이상인 사람이 체중을 줄일 생각은 안 하고, 200㎏이 되는 걸 목표로 살아선 안 된다. 2040년, 2050년, 2100년 지구를 생각하고 에기본을 계획해야 한다.

석광훈=원전을 계속 돌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조선 시대 말 개혁ㆍ개방 대신, 봉건제를 유지하자고 말하는 것과 같다. 굉장히 빠르게 변하는 에너지 산업 구조 재편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국제에너지기구(IEA)도 원전과 석탄화력발전의 발전 비중 전망치를 매년 줄여가고 있다. 2040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원전은 100GW(기가와트) 늘지만 재생에너지는 3,200GW가 증가할 전망이다. 이런 국제적 추세를 외면하고 탈원전 논쟁에 발목 잡힌다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에너지기술 경쟁력은 크게 하락하게 될 것이다.

◇에기본, 원전 퇴출 충격 줄이고 기술혁신 도와야

전문가들은 “원전 운영 안전성 확보를 위해 원전 생태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방안도 에기본에 담겨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에너지전환 정책에 따른 전기요금 인상분을 얼마나 수용할 수 있는지 등 국민인식조사를 바탕으로 계획이 만들어져야 한다”라고도 조언했다. 현재 건설 중인 신고리 5ㆍ6호기 운영 기간까지 고려하면 국내 가동 원전은 지난해 24기에서 2030년 18기, 2050년 9기, 2082년 0기로 줄어든다.

이종수=우리나라는 기술혁신으로 문제를 풀어왔다. 이를 성장 동력으로 삼아 수출을 늘리고, 경제를 발전시켰다. 석탄발전은 오염물질 배출에 대한 기술혁신, 가스발전은 가스터빈 기술 확보를 통한 시장 개척, 재생에너지 발전은 발전효율 향상 등 분야별 기술혁신 지원 내용이 에기본에 담겨야 한다. 탈원전 계획을 세웠지만 원전과 석탄화력발전을 지우는데 집중할 게 아니라, 재생에너지 기술이 충분히 발전하고 에너지전환으로 가기까지 원전과 석탄을 중간 연결 다리 에너지로 쓸 수도 있다. 이들에 대한 역할을 재조명해야 한다.

석광훈=원전 산업 노동자와 산업체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관련된 내용이 체계적으로 담겨야 한다. 과거 1980년대 연탄 퇴출 정책을 펼 때 연탄가스 사업자를 도시가스사업자로 업종전환을 시키면서 여러 사회적 갈등으로 불거질 수 있었던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했다. 이를 잘 해결해야 제대로 된 혁신을 빠르게 할 수 있다.

박종배= 원전 안전을 위해서 원전 생태계가 유지될 수 있도록 지원방안 등 관련 논의가 필요하다. 향후에 이런 부분이 8차전력수급계획이나 지속해서 발전적인 차원에서 계속 논의가 돼야 한다.

온기운=2082년이면 국내에서 가동 중인 원전이 없어지게 된다. 자기 집에서 못 먹게 하는 식품을 남에게 팔려고 하면 누가 사겠나. 원전 생태계도 붕괴할 수밖에 없다. 관련 인력이 중국 쪽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탈원전하면서 원전을 다른 나라에 수출하려고 한다. 정부가 여러 에너지 관련 계획에서 입장을 명확히 해야 한다.

◇전력 구조, 독점에서 시장경쟁으로 변화 필요

전문가들은 또 “국내 전력 산업구조가 1980년대에 만들어진 공기업 중심 독점 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시장 개방을 통해 소규모 사업자가 뛰어들고, 여러 혁신기술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종수=에너지 관련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위해선 관련 자료의 투명한 공개가 우선돼야 한다. 에너지 구조는 정부가 앞장 서 발전비율을 정하는 게 아니라, 시장에서 여러 에너지가 경쟁하면서 결정되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 석탄ㆍ원전ㆍ재생에너지 등 여러 발전원을 구분해 전력을 구매하거나, 더 값싼 가격에 전기를 공급하는 발전사업자를 고를 수 있도록 소비자 선택권이 보장돼야 한다. 시장 경쟁을 통해 자연스럽게 에너지전환이 이뤄지게 해야 한다.

박종배=국내 발전 체계는 중앙집중적이다. 이런 시스템은 예상치 못한 자연재해 등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오늘날 그리 좋지 못한 방식이다. 해당 지역에서 전력을 생산하고 거기서 전력을 소비하는 분산형 전력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도 전력체계를 분산형으로 구축해가고 있다.

석광훈=국내 에너지 시장 구조는 과거에 머물러 있다. 가령 한전의 발전자회사가 석탄화력발전에서 가스발전으로 전환하려 해도 가스공사가 있어 가스를 직접 구입할 수 없다. 가스공사에서 사서 써야 한다. 비용이 늘고 경쟁력이 떨어진다. 전력과 가스, 통신 시장의 장벽을 허물어 새로운 산업이 나올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일본은 전력시장을 개방하면서 520개 소매전력사업자가 시장에 진입했다. 통신과 가스공급까지 결합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생겨나고 있다.

변태섭 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저작권 한국일보]에너지전환 토론회 참여자 프로필. 그래픽=신동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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