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고준위 관리 계획 재검토···'일부' 혹은 '전면' 수정
국내에 폐연료봉 안전 보관 장소 있는지 누구도 확답 못해
경수로형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사진=한국원자력환경공단)
경수로형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사진=한국원자력환경공단)

[서울파이낸스 김혜경 기자] 방사성폐기물 처리 문제는 원자력발전소 운영의 '아킬레스건'이다. 방폐물은 크게 중·저준위와 고선량 방사선을 내뿜는 사용후핵연료 등 고준위로 나뉜다. 중·저준위의 경우 경주 방폐장에서 처분되지만 고준위는 한반도 내 적합한 방폐장 부지의 존재 여부도 불명확하다. 국가 차원에서 원전 건설과 방폐물 처리는 동전의 앞·뒤와 같지만 한쪽은 '돈을 버는 사업'인 반면 다른 한 쪽은 '돈이 드는 사업'이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동등하게 다루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5월부터 시작된 고준위 관리정책 재검토준비위원회가 반년간의 활동을 종료하고 11월 말 정책건의서를 정부에 제출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건의서 검토 등을 거쳐 1월 내 공론화위원회 구성을 끝낸다는 계획이다. 준비위에서 합의하지 못한 쟁점은 공론화위에서 결정될 예정인 가운데 숨어있던 새로운 의제들이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준비위 단계 쟁점은 '공론화 의견 수렴 범위'와 '위원회 구성'

재검토준비단과 출범 예정인 공론화위가 검토할 대상은 2016년 7월 박근혜 정부가 내놓은 '고준위방폐물 관리 기본계획'이다. 공론화에 앞서 준비단이 만들어진 목적은 과거 공론화의 문제와 쟁점을 도출해 향후 공론화 추진기구가 다뤄야할 의제에 대한 합의를 위해서다. 당시 공론화위는 위원 구성의 편파성과 형식적인 질의응답, 논의되지 않은 재처리 연구 진행, 최종처분장·중간저장시설 일괄처리 등 시급성만을 강조하는 정부 태도로 인해 시작부터 논란이 인 바 있다. 이에 준비위에서는 지난 공론화 과정에서 시민단체가 참여하지 않은 것과 최종 권고안이 어떤 논의를 거쳐 도출됐는지 불명확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준비단은 △정부추천 4명 △원자력계 추천 3명 △환경·시민단체 추천 3명 △원전소재 지역 5명 등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매주 한 차례 회의를 열고 △재검토 목표 △재검토위원회 구성방안 △재검토 의제선정 △의견수렴 방법 등에 대해 논의했다. 당초 4개월 간 활동 후 지난해 9월 종료할 예정이었지만 추가 합의가 필요해 2개월 연장됐다. 

산업부 원전환경과 관계자는 "'재검토'의 뜻은 검토 대상인 2016년 고준위 기본계획이 공론화 과정에 따라 일부 혹은 많은 부분이 수정될 수 있다는 것"이라면서 "앞서 준비단이 제출한 건의서의 구체적인 내용도 공론화위 출범 후 논의가 진행되면서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사용후핵연료는 현재 각 발전소 내 임시저장고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중수로 월성 원전의 경우 오는 2021년 포화 상태에 제일 먼저 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인호 전 산업부 차관은 지난 2017년 8월 "사용후핵연료는 현재 1만5000t 수준에서 2030년 3만t 수준으로 증가해 관리 비용이 엄청 늘어나는 상황"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홍의락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고준위 처리장 건설과 운영에 64조1301억원이 소요될 전망이지만 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이 관리비로 적립한 금액은 4조7384억원 정도다. 

준비단이 합의를 하지 못한 쟁점은 '지역 공론화 의견 수렴 범위'와 '공론화위원회 구성' 등이다. 특히 원전 지역의 범위를 어떻게 정할 것이냐를 두고 '원전 소재지를 포함하는 반경 5km'와 '방사선 비상계획구역을 포함하는 반경 30km', 두 가지 대안을 두고 마지막까지 대립한 것으로 알려졌다. 준비단 회의록에서도 "지역단위 공론화 범위 논의는 마지막 안건으로 논의순서 조정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포함돼있다.

준비단 위원으로 참여한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시민·환경 단체 소속 3명과 지역 대표 5명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는 방식으로 가야한다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방사선 비상계획구역으로 의견을 모았지만 다른 그룹에서는 반대도 있었다"면서 "다만 준비단에서는 찬반 표결을 실시하지는 않았고, 합의를 목표로 논의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한상준 경주월성원전 민간환경감시기구 소장은 "재검토준비단이 만들어지는 단계에서 정부 측은 5개 지역 말고 3개 정도의 지역만 참여하라는 입장이었다"면서 "9월까지 준비단이 파행되지 않고 원만한 합의를 이뤄내려면 굳이 5개 지역이 다 참여할 필요는 없다는 뜻으로 파악했다"고 말했다.

이어 "공론화 준비 단계에서부터 환경단체가 참여했다는 점과 지역 주민들에게 일일이 의견을 묻겠다는 점에서 지난 정부에서 이뤄진 공론화 과정과는 다를 것으로 보인다"면서 "당시에는 지역 공론화를 실시하겠다고 해놓고 대학 용역을 통한 여론조사만 실시했다"고 덧붙였다.

◇ "한반도 내 영구처분 가능한지 여부도 공론화해야" 

사용후핵연료는 최소 10만년 이상 격리가 필요하다. 세계 각국에서도 안전한 보관에 대한 논의가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현재 고준위 영구처분장이 건설되고 있는 곳은 핀란드가 유일하다. 스웨덴과 독일의 경우 부지를 확보했거나 선정 절차가 진행 중이다. 이전 정부의 고준위 기본계획 권고안에는 오는 2028년 고준위방폐장 부지를 선정하고, 2035년 중간저장시설 확립, 2055년 영구처분장을 건설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문제는 한반도 내 고준위 영구처분장을 만드는 것이 가능한지부터 의문이다. 심층처분에 적합한 부지가 존재하는지 여부조차 불투명하다는 것. 지난 1994년 정부는 일방적으로 굴업도를 방폐장 부지로 결정한 후 활성단층이 발견되자 계획을 중단하기도 했다.

이번 준비위에서도 영구처분시설 관련 논의가 이뤄졌다. 영구처분장 설치는 당연하기 때문에 공론화위에서는 처분방식과 시설 확보를 위한 로드맵에 대해 포괄적으로 논의해야 타당하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이 대표는 "한반도 내 고준위방폐장 건설이 가능한지 여부도 현재 기술 수준이나 주민의 수용 여부를 놓고 공론화해야 된다고 본다"면서 "국내에 폐연료봉을 안전하게 보관할 장소가 있느냐에 대해 어느 누구도 확실한 답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원전업계에서는 가능하다고 말하겠지만 가장 기본이 되는 데이터가 없는 상태"라면서 "이 같은 상태에서 최종 처분장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도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산업부는 처분장 건설 가능 여부에 대한 내용이 공론화 과정에서 제기될 수는 있겠지만 기술적 검증이 필요한 사안이기 때문에 공론화위에서 다루기에는 어려울 것으로 봤다. 원전환경과 관계자는 "처분장으로 적합한 부지의 유무에 대해 어느 누구도 장담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안전성 확보가 최우선"이라면서 "공론화위가 기술적 검증의 범위까지 다룰 수 있는 기구는 아니지만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거쳐야 할 절차들에 대한 논의는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7년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재개 공론화는 결과를 떠나 시민 471명이 공론을 모았다는 점에서 문재인 정부의 '숙의 민주주의 실험 1호'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동안 국가가 '톱-다운' 방식으로 주도했던 에너지정책에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시민 의견을 반영했다는 점에서다. 향후 출범할 고준위 공론화위가 진정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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